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너무 오랜만에 읽은 책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이 책에서 물고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고 이 책을 읽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다 올해 책 추천 영상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을 보고 다시 읽게 되었다. 정말 추천할 만한 책이다.

작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람의 전기를 읽으며 어떻게 저 사람은 많은 시련 속에서도 물고기를 수집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조사를 시작한다.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인간인 나 한 사람은 무의미한 존재인데 계속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에서 시작한 것 같다. 조던은 그 무의미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자기 확신이 강해졌다.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우생학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가난하거나 부족한 사람들의 자손 번식을 막고 학대하기까지 했다. 이걸 책에서는 사다리라고 비유했다. 덕분에 조던은 자기 나름대로 업적을 이루며 삶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민들레에 비유해 한 개인이 하찮지 않다고 말한다. 나의 존재가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작은 선행이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던은 죽는 순간까지 그의 만행에 대한 벌을 받지 않았다. 그의 만행에 대한 벌은 그의 인생을 바쳐서 연구했던 어류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류는 사실 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직관적으로 나눠놓은 것일 뿐이며 진화적인 관점에서는 종에 따라 어떤 종은 포유류 어떤종은 파충류에 속한다는 점이다. 살다 보면 어류라는 분류처럼 다른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정해놓은 틀에 맞춰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고 당연하게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일반 사람에게 물고기가 어류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나 싶기도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동설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이 우주에 대해 연구하고 더 많은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건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류가 아님을 인정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 인생도 더 다채롭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자기 확신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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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p. 마치 내가 살아오는 내내, 그 질문을 할 순간을 열렬히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는 내게 인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통보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지켜보았다가 보살펴주는 신적인 존재는 없어. (…) 진실은 이 모든 것도, 너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란다”

57p.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의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141p. 심리학자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건 가혹한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이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207p.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그 사다리가 데이비드에게 준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의 해독제. 하나의 거점. 중요성이라는 따스한 느낌.

226p. 어떤 사람에게 민들레는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똑같은 식물이 훨씬 다양한 것일 수 있다. (…)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247p. 왜냐하면 별들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되니까